커피, 와인, 맥주의우디 향미 어떠세요?
아래는 커피비평가협회(CCA) 박영순 회장(경민대학교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의 커피향미에 대한 글입니다. 다양한 커피향미에 대한 정보와 그에 대한 비평은 커피뉴스 사이트 커피데일리에서 시리즈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지난 번 '커피의 감자 향미는 좋은 것? 나쁜 것?' 기사에 이어 오늘은 커피, 와인, 맥주의 우디 향미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합니다.
커피의 향미를 묘사할 때 ‘우디(Woody)하다’는 외마디 표현은 오해를 사기 쉬우니 조심할 일입니다.
적지 않은 국내 책들이 ‘우디’를 커피 향미의 대표적 결점(Defect)으로 단정한 탓입니다. ‘나무냄새’ ‘나무 뉘앙스’ ‘나무와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게 정말 우리의 기분을 나쁘게 할까요? ‘우디’를 “커피 생두(Green bean)나 원두(Roasted bean)를 오래 보관하는 바람에 생기는 결점”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필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우디하다’가 부정적인 묘사로 틀 지워진 것일까요? 아무래도 와인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한 잔에 담기는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는 ‘커피테이스터(Coffee Taster)’들이 향미를 표현하는 방식들은 대부분 와인에서 빌려왔습니다. 커피아로마키트 ‘르네뒤카페(Le Nez Du Cafe)’를 구성하는 36개의 샘플들도 모두 와인아로마키트에서 골라낸 것입니다. 향미 표현과 관련해 ‘와인은 커피의 어머니이다’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지요.
와인에서 ‘우디’는 향미의 결점을 지적하는 표현임에 틀림없습니다. 와인을 마실 때 관능적으로 기분이 좋은 나무 계통의 느낌이 들면 ‘오키(Oaky)하다’고 합니다. 포도즙이 오크통에서 숙성될 때 갖게 되는 향미입니다. 안쪽 면을 적절하게 불로 그을린 오크는 숙성과정에서 포도가 과일로서 지닌 성질들과 어우러지면서 토스티(Toasty)한 뉘앙스와 바닐라 향미(vanillin flavor)를 와인에 부여합니다. 그러나 포도즙이 애초 강건하지 못한데다 오크마저 생나무로서의 특성이 지나치면 와인의 면모를 압도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오크의 느낌이 과도하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바로 와인에서 말하는 ‘우디’입니다. 세계적 와인평론가인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와인에서 지나치게 오크의 느낌이 강할 때 우디하다고 말한다(When a wine is overly oaky it is said to be woody)”고 했습니다.
맥주에 대한 향미 평가에서도 ‘Woody’가 등장합니다. 생맥주(Draught beer)에서 우디는 ‘있어서는 안 될 결점’이라는 점에 이론이 없습니다. 맥주를 담았던 통을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아 방선균(Actinomycetes)이 기생하면서 발생하는 이취(Nasty smell)임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크숙성 맥주가 널리 퍼지면서 우디의 쓰임이 달라졌습니다. 맥주를 담아 숙성한 통의 내부가 적당하게 불에 그슬린 것이라면 캐러멜, 스카치 캔디(Butterscotch), 아몬드, 구운 빵(Toasted bread)의 향미가 느껴집니다. 이럴 때 그 맥주의 맛이 우디하다고도 합니다. 만약 통의 내부를 진하게 그을렸거나 버번(Bourbon) 위스키를 담았던 것이라면 커피-초콜릿-카카오의 느낌이 드는데, ‘맥주에서 우디한 숙성향이 난다’고 해도 멋진 표현입니다. 새로 만든 싱싱한(?) 통에서 숙성한 맥주에서는 흔히 ‘그린(Green)’이라고 해서 풀이나 야생 식물의 진한 향이 풍기기도 합니다. 이 향은 홉(Hop)에서 비롯되는 생동감과는 또 다른 활달함인데, “새 오크통에서 빚어진 우디함이 인상적이다”고 묘사해도 좋습니다. 맥주의 향미에서 거론되는 우디에 대해 이 처럼 보충 설명이 뒤따르게 된다면 애호가들의 즐거움은 분명 배가 됩니다.
찻잎을 발효 도중에 덕어 만드는 우롱차(Oolong Tea)에게 단향-꽃향과 어우러지면서 물에 비치듯 은은하게 느껴지는 우디(Slightly woody flavor)는 고급스러움을 보증하는 관능적 지표이기도 합니다. 시가(Cigar)에서 우디의 향미적 속성은 담뱃잎을 담아 숙성하는 통의 재질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키(Oaky), 스모키(Smoky)를 사용하는 화법이 와인의 향미 묘사법을 닮았습니다.
위 사진은 커피씨앗을 땅에 심은 뒤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의 모습입니다. 파치먼트에서 실뿌리를 내어 자란 모습이 마치 나무와 같은 질감을 풍깁니다. 커피에서 우디함이 느껴진다는 것은 어쩌면 커피에게는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커피 향미의 묘사에서 ‘우디’를 사용할 때, 맥주의 우디처럼 보다 구체적인 언급을 하는 게 향미를 만끽하는데 유익할 성 싶습니다. 커피에서 삼림욕을 하는 것과 같은 신선함과 화한 느낌이 나고, 히노끼(편백나무)로 둘러싸인 찜질방의 ‘산소방’ 같은 데에서 나는 화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이 든다면 우디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어서 “그것은 긍정적인 향미로서 시더(Cedar), 향나무로 만든 연필을 깎는 향, 깨끗하게 말린 삼나무를 갓 베어낸 듯한 신선하고도 따스한 기운인 듯하다”는 설명을 붙인다면 더욱 친절한 묘사가 되겠지요.
가끔 참나무바베큐 냄새가 느껴진다면서 우디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커피로스팅 과정에서 얻게 되는 ‘스모크(Smoke)’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젖은 채 오래 방치된 장작이나 낡은 나무창고에서 풍기는 냄새가 난다며 우디하다고 말하는 것도 권할 게 못 됩니다. 이런 느낌을 주는 커피는 생두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오염됐거나 보관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커피로서, ‘곰팡이내(Moldy, Musty)가 난다’며 결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향미가 좋지 않은 커피에 따라붙는 ‘우디함’은 대부분 ‘스테일(Stale)’을 뜻합니다. 오래 묵어 퀴퀴한 냄새가 나거나,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휘발성 향기성분이 거의 날아가 볼륨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평한 맛(flat)의 매력이 모자란 커피를 지적할 때 우디하다고 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마른종이(Papery), 마분지(Cardboard), 이쑤시개(Wooden pick)를 씹을 때의 느낌이 든다”고 자세히 느낌을 서술한다면 더욱 생생하게 감성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커피에서 ‘우디’는 기미조차 없어야 할 ‘천형(Divine punishment)’과 같은 게 아닙니다. 오크와 시더와 같은 느낌은 많은 커피들이 갖고 싶어하는 매력 포인트입니다.
[글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협회장, 경민대학교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