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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쇼머와 씨애틀 커피에 대한 연구
2015.11.02 Mon 2,260

기사 요약

'데이비드 쇼머'는 커피 마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전세계 커피업계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데이비드 쇼머'는 커피 마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전세계 커피업계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그의 단행본 ‘완벽한 한 잔의 커피를 위하여'로 인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씨애틀 타임즈(The Seattle Times)'에 실린 기사를 통해, 그가 커피를 대하는 자세를 보며, 과연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 한 수 배워보려고 합니다.^^ (저희 커피TV도 비바체를 방문해서 쇼머도 만나고, 취재한 적 있습니다!! 지난기사 보기 : 비바체 소개 기사 연결하기)

브로드웨이의 북쪽 끝, 캐피톨 힐에 위치한 ‘에스프레소 비바체’의 두 번째 에스프레소 바 근처에는 ‘굿 윌 바리스타 유스 트레이닝 프로그램’에서 온 여성들이 모여, 백발의 머리와 가는 수염이 자란 채, 검은 셔츠에 검은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에스프레소 샷을 추출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모금을 마시고 '커피가 계층구조를 이루었네요, 가장 아래 부분이 가장 달콤한 부분입니다ㅣ고 말했습니다. 그가 바로 에스프레소 비바체의 소유주인 '데이비드 쇼머'입니다. 일반 고객들은 그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할 수 있지만, 쇼머는 고메이(Gourmet) 커피 세계에서는 스타벅스 대표인 '하워드 슐츠'만큼 영향력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슐츠가 전세계에서 21,000개의 매장을 확장하며 세계정복의 길(?)을 가는 동안, 쇼머는 정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에스프레소 비바체는 오로지 세 곳의 지점만을 운영하고 있으며, 확장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쇼머는 양으로 세계를 정복하기보다 품질을 높이는데 집중해 왔습니다. 그는 커피에서 나는 향기만큼, 맛도 좋아야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습니다. 스타벅스 시애틀 리저브 로스터리&테이스팅 룸 영상기사 연결하기 시애틀의 첫 에스프레소 매장인 ‘모노레일 에스프레소’ 의 창업자인 '척 비크'는 “데이비드는 바리스타를 직업으로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 커피 자체를 과학과 예술로 변화시켰고 또한 슐츠가 에스프레소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동안 쇼머는 시애틀에서 커피를 이슈화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나는 하워드보다 그의 공로를 더 인정합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수백명의 바리스타들이 비바체에서 일하면서 쇼머에게 교육을 받았고, 다른 유명한 카페로 이직해 또 그 직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전 비바체의 바리스타였던 '크리스토퍼 나이슬리', '아벨 알레메다'와 '미치 헤일'같은..그들은 매우 유명한 카페인, ‘메노티 커피 스톱’과 ‘에스프레소 프로페타’를 로스앤젤레스에서 오픈해 운영 중에 있습니다.

맨하탄의 첫 스페셜티 카페인 ‘나인 스트리트 에스프레소’의 오너인 '케네스 나이'도 쇼머의 기술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이의 카페는 2001년도에 오픈해서 뉴욕타임스, 푸드앤 와인, 콘데 나스트 트레블러의 호평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는 어느 누구와도 다르게 커피와 추출의 과학에 뛰어들었어요. 그는 그 시대보다 몇 광년 앞서 있던 사람이었어요”라고 '나이'는 쇼머의 공로를 아주 높이 평가했습니다. 59세의 쇼머는 1988년 그의 첫 매장을 브로드웨이에 오픈했고, 1년 뒤 다른 매장을 시내에 오픈했습니다. 그는 에스프레소 머신 제조사인 '라마르조코 공동 소유자인 '켄트 바케'와 그의 커피 컨설턴트인 '에릭 스톤'으로부터 에스프레소 추출법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스타벅스 창설자 중 한명인 제브 시글은 '시기가 적절했어요, 왜냐하면 1980년도에 에스프레소에 대한 수요가 좀 있었고 그후 카페 라떼로 그 수요가 기울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쇼머는 도약했죠”라고 했습니다. 쇼머는 1989년도에 이탈리아에 처음 가게 되었고, 거기서 '이탈리아인들은 리스트레토 샷을 선호하고, 푸어오버 대신 짧게 뽑은 에스프레소들을 더 좋아했으며, 우리가 추출 기술측면에 있어 아주 많이 뒤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커피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분쇄 커피의 입자 크기를 다루는 것과 에스프레소를 포터필터에 담는 것, 그리고 브루잉을 위한 물의 온도 등을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커피는 정신없이 요동치면서도 답변은 해주죠, 정말 유별나요”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가 첫 매장을 오픈하기 전에 시애틀 도서관에서 커피 입문서를 검색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어떤 기사나 책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90년도에 ‘카페올레’라는 매거진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으며, 1996년도에 그는 “에스프레소 커피: 상업적인 에스프레소 프로그램에서 완벽한 에스프레소 커피의 요소들을 해석하고 조정하는 방법”라는 도서를 출간해 많은 바리스타들에게 그의 노하우를 전달했습니다. 주로 그가 찾아낸 그라인더, 물의 온도, 탬핑 기술에 대한 연구내용들을 담고 있었죠. 현재는 세 번째 에디션이 9쇄를 기다리고 있고, 일본어, 한국어와 러시아어로도 번역되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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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의 집합체인 ‘오리진 커피 네트워크’의 공동창시자 '다니엘 험프슈리스'는 '2000년 초 시애틀의 ‘빅트롤라 커피 로스터’에서 일했을 때 쇼머의 책을 처음 읽었고 커피산업의 종사자들에게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책에는 라떼아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 중 쇼머는 밀라노의 바리스타들이 에스프레소에 우유로 모양을 내면서 붓는 것을 보았고, 그 기술을 전수받아 시애틀로 가져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바리스타 중 한명인 '에이미 밴더백'은 라떼아트를 가능하게 한 ‘벨벳 우유 폼’으로 유명했던 '업타운 에스프레소'에서 근무했고, 또 다른 직원 '세라 헌팅'은 큰 ‘B’ 자를 닮은 모양을 부었고, 또 다른 바리스타인 '리사 파슨스'는 쇼머와의 50불 내기를 위해 하트 모양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들을 보며 제가 오히려 배웠죠'라고 쇼머가 말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하트와 로제타를 그려 내는 커피는 비바체의 라떼아트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이제는 그곳의 시그니처가 되었습니다. 쇼머의 1995년도 영상인 ‘카페 라떼아트’는 타 지역의 바리스타들에게도 좋은 자가 되었습니다. 라떼아트는 오늘날 다양한 대회들이 생길 만큼 커피업계 큰 주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카페 라드로의 공동소유자인 켈리는 “데이비드가 에스프레소 과학을 개발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빚을 지게 되었죠”라고 쇼머를 평가했습니다. 쇼머는 습관적으로 평일에는 그의 카페들을 돌아가며 방문하는데, 남부 레이크 유니온 알리24번지에 위치한 곳부터 시작해서 브로드웨이점 매장을 방문하고 다시 되돌아오면서 11번가의 비바체를 가기 전에 그가 직원들을 훈련시키는 브릭스 카페를 방문하는 코스라고 합니다. “그는 그의 삶, 그의 일상과 취미에 대해 엄격했어요” 라드로 카페 소개 기사 연결하기 비즈니스도 점차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스타 인증을 받으면 그의 직원들은 시급10.50달러를 받고 팁도 추가로 받을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물론, 휴가보상과 건강보험도 있죠. 이런 자비로운 직원에 대한 처우는 그들에게 충성심을 갖게 해주었고, 그의 49명의 직원들은 비바체와 함께 10년간 일해 왔으며 그 중 그 곳에서 20년 넘게 일한 리사 파슨스와 돈 존스도 있습니다. 커피산업에 있어 쇼머의 가장 큰 공헌은 '엔지니어링 재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0년도 초에 쇼머는 카페오레 매거진에 온도조절문제에 관한 칼럼을 게재했는데요~그는 '에스프레소가 올바르게, 지속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추출 온도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쇼머는 “‘미스터커피의 짜리 커피가 여기에 ,000 머신들보다 온도가 안정적이다. 정말 수치스러운 것이다. 당신들 모두 창피한 줄 알아라’라며 기고 했다고 합니다. 쇼머는 비율적 필수 미분 조정기(보일러를 조정하는 컴퓨터라고 보면 된다’라고 쇼머가 설명을 덧붙였다)를 머신에 연결하기 위해 라마르조꼬의 엔지니어들과 기술자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경지에 이르게 된 때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발라드점에 있던 라마르조꼬 제조기술자인 '로저 휘트먼'과 공동소유인인 '바케', 베르살라브 디자이너인 '존 비트'와 함께 있었는데,  '아마 2001년도 2월 28일이었을꺼에요. 제 생각에 우리는 드디어 안정적인 온도로 세계 최초 커피를 만들었죠.” 캐피털 힐에 위치한 쇼머의 본점인 브릭스 카페의 미팅룸에서 쇼머가 그때의 감동에 사무친 듯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정말 달콤했죠. 저는 절대로 그 버터 카라멜과 같은, 혀에서 해가 뜨는 것 같은 그 맛을 잊지 못할거에요. 제가 그 커피를 맛보는 순간 제 혀에서 서서히 달콤함이 피어나면서 실크 같은 부드러움이 느껴졌어요- 실크 잠옷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쇼머의 놀라운 발견에도, 라마르조꼬는 곧바로 머신을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나한은 '데이비드는 분명한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고 항상 새로운 것을 향하는 사람이었어요, 개발하고 깨닫는 것은 한 순간이고, 나머지는 그것을 비즈니스에 적용을 시켜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죠. 우리가 그를 조금 귀찮게 했을거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런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쇼머는 또 다른 에스프레소 머신 회사인 시네쏘를 창업한 라마르조코의 전 엔지니어였던 '마크 바네트'와 손을 잡았습니다. 그의 연구는 첫 필수미분조정머신의 개발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합니다. 라마르조꼬와 쇼머의 관계가 틀어졌지만 모나한은 '에스프레소 머신의 성배는 온도의 안정성이었고 데이비드는 이 부분을 계속 강조했던 사람입니다. 그 결과 데이비드 이전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머신회사들이 온도의 안정성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라며 그의 발명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라마르조꼬USA 시애틀 본사 탐방 영상기사 연결하기 쇼머는 모든 커피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도, 매 해 개최되는 바리스타 대회를 싫어하고 커피 컨벤션이나 전시회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의 바리스타들은 바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도록 허가받기 6개월 전부터 교육을 받지만 쇼머는 커피를 만드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쇼머는 “제가 비즈니스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 중요하죠. 저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최대한 그 바램을 신속하게 들어주고 싶어요. 특히 '에스프레소 대회는 젊은이들이 실패하도록 세팅되어 있어요. 대회는 그들을 마치 락스타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들죠. 그리고 고객들은 멀리하게 되죠. 저는 그게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객들이 생겨났습니다.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에 따르면 커피는 460억달러가치의 산업이라고 한다- 그중 스페셜티 커피가 51%를 차지한다.- 밀크 베이스 라떼에서 브루잉으로 산업 트렌드가 바뀔 때도 쇼머는 이러한 유행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개성있는 다른 커피 전문가들도 지난 10년 동안의 같은 여정을 거쳐 왔고, 쇼머의 기본 원칙들을 꾸준하게 설명해 왔습니다. '나이'는 “몇몇의 사람들이 그가 너무 9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쇼머 그 사람은 존경할만한 사람이고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에요. 그는 처음으로 박스 위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이거에요. 이게 그겁니다. ‘이 일은 특별하고 존중 받아야 하며 아주 높게 대해주어야 해요’라고 한 사람이에요.”라고 평가했습니다.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는 쇼머는 벌써 다음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쇼머는 “나는 그라인더 부분을 좀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해보니까 꽤 어렵지만요”라고 여운을 남겼습니다.!! '시애틀에는 3V 카페가 있다' 영상기사 연결하기   *Source: The Seattl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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