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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S 영화 _ 간절했으나 떠나버린 사랑, 혹은 커피

원하지 않앗지만 운명적으로 내 삶을 파고드는 것들이 있다. 자신도 미래도 불투명하지만 받아들이고 감내해야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는가 싶었는데 소리없이 떠나가기도 한다. 커피는 영화의 배경으로, 훌륭한 소품으로, 잔잔한 복선으로 자주 사용되어 왔다. 오늘은 원치않았으나 다가왔다 멀찍이 떠나버린 커피와 사람의 이야기 두편을 전한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긴긴 늦가을 밤이라면 커피 한 잔 홀짝이며 이불 쓰고 들여다봐도 좋겠다. 첫사랑 팥빙수: 초련 홍두빙(Ice Kacang Puppy Love) “똑같은 물과 똑같은 커피인데 내가 만든 커피는 왜 맛이 다른걸까?” 말레이시아 페락(Perak)의 작은 마을 트로노(Tronoh). 중국인 커피숍 주인의 둘째아들 까까머리 보탁은 어릴적부터 함께 살아온 베타가 좋다. 그리고 보탁의 가게에 의지해 엄마와 함께 쌀국수를 파는 베타는 자신과 엄마를 찾지 않는 아빠가 그립다. 하지만 미모의 엄마를 곁눈질하는 마을 남자들과 모녀를 바라보는 주변의 곱지 않는 시선 때문에 드세고 까칠한 아이로 살아간다. 대대로 커피를 팔아온 보탁의 아버지는 보탁의 형 '라디오'가 대를 이어가길 바라지만 형은 좁은 마을을 떠나 대도시로 떠나고 싶다. 하지만 불편한 다리로 인해 차마 꿈을 포기하고 보탁에게 그 일을 맡기라고 항변한다. 반면 보탁은 그림에는 소질이 있을뿐 커피 만드는 일은 영 서툴다. 어쩔 수 없이 커피 만드는 닐을 배워보지만 도무지 아버지와 형이 만들어내는 맛을 재현해내지 못한다. 어느날 베타는 엄마와의 다툼 끝에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에 절망하고 여행에 동행한 보탁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커피는 애증의 편린과도 같다. 아버지의 손맛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라디오는 떠나고 싶어하고, 정작 아버지를 돕고자 하는 보탁에게 커피는 힘겨운 도전일 뿐이다. 영화에 나오는 커피는 우리네 다방커피와 비슷해 보이는 커피. 영화에서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페락주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말레이시아 이포(Ipoh) 지역에서 생산된 원두로 만든 화이트 커피로 보여지는 이 커피는 말레이시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시절 값비싼 커피를 마시기 어려웠던 말레이시아 노동자들이 이포에서 일했던 중국인들의 원두커피를 부르던 말이라고 한다. “일단 끓인 물로 잔을 데워. 물이 뜨거워야해. 커피 세 숟가락, 우유, 충분히 저어주고 끓는 물을 넣어. 그러면 끝이야.” 커피 세 스푼, 물 한 스푼, 우유의 배합이 전부인데 형이 만드는 커피와 보탁이 만드는 커피의 맛은 하늘과 땅 차이다. 세 부자의 힘든 연결고리를 이  커피가 담당하고 있지만 베타와 보탁의 첫사랑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둥이기도 하다. 이웃들의 수근거림은 이어지고 베타와 엄마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싱그럽던 추억의 시간들이 지나고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오지만 보탁은 자신의 사랑을 끝내 고백하지 못한다. 밤마다 그녀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 공모전에서 1등상을 수상했지만, 커피 배달을 가며 홀로 눈물을 삼키며 떠나 사랑을 그리워할 뿐이다. 세월이 흘러 라디오는 쿠알라룸푸르에 자신의 커피숍을 내게 되지만 보탁과 베타의 사랑은 그냥 엇갈림으로만 흘러간다. 아직도 보탁에게는 달달한 화이트 커피가 기억에서조차 아련해져 버린 첫사랑의 씁쓸한 맛이 아닐까.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덴마크 여성 카렌은 사랑하지 않지만 그녀의 재산에 관심이 더 많은 블릭센 남작과 결혼해 아프리카 생활을 시작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를 여자로 느끼지 않는 블릭센은 당초 목장을 운영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커피농장을 샀다고 통보한다. 매일 돌보며 신경쓸 일 없이 때가 되어 수확하면 되는 농장이라는 그의 말에 카렌은 분노하고 둘의 관계는 소원해진다. 블릭센에게 커피는 그저 가만히 있어도 돈을 가져다주는 작물일 뿐이다. 마치 카렌처럼. 한편 아프리카로 오던 중 알게 된 데니스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아껴주게 되고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데니스는 사라피로, 카렌은 커피농장을 꾸려내는 일로 아프리카에서의 하루는 흘러간다. 카렌은 자신이 직접 수확한 체리를 가공하고, 씻고, 말리는 일에 정성을 기울인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마을 사람들의 생활 개선에도 나선다. 아프리카 케냐의 광활한 사바나 초원을 배경으로 울려퍼지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협주곡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우리나라에 상영될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커피 플랜테이션의 일과를 보여줘 신선했던 작품이다. 케냐에서 처음 커피가 재배된 장소는 1893년 인도양과 인접한 해안지방 부라(Bura)로 그뒤 1904년 수도 나이로비 인근 키쿠유족 거주지에서 본격적인 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속 추장이 나오는 그 부족이다. 케냐는 대부분 1500미터 이상의 고원지대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적절한 토양과 강수량, 기온 등 커피 재배에 이상적인 자연조건을 갖고 있다. 영화 속 배경 1913년은 제국주의 식민지로 커피농장이 막 세워지던 시기다. 영화에서도 추장은 그런 고지대에서는 커피를 심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애당초 그녀에게 커피는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떠넘겨진 삶인 셈이다. 묘목을 심어도 열매를 수확하려면 몇 년이 걸리고 잘 자랄 수 있을지 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카렌은 절망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해간다. 추장을 설득해 작업을 진행시키고 수확부터, 세척, 건조,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자신의 일상을 바친다. 카렌은 자신의 재산에만 욕심이 있는 탐욕스런 남편과 이혼하고 데니스에게 결혼을 요청하지만 자기만의 자유를 만끽해 온 데니스는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한다. 설상가상으로 정성을 기울여온 커피농장마저 화재로 모두 상실한 카렌은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를 배웅하기로 한 데니스 마저 비행 중 사망한다. 계획에 없었지만 삶에 밀려온 커피는 한 순간 성공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화재와 함께 절망만을 안긴 채 아프리카를 떠나게 만든다. 커피는 그녀의 사랑의 궤적과도 묘하게 닮아있다. 비록 결혼과 커피 농장은 실패하지만 평생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추억과 아프리카라는 땅을 마음 속에 담아가는 카렌의 모습은 그저 돈 많은 여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변화를 관객에게 전해준다. "내가 아프리카의 노래를 안다면 기린과 그 등 위로 떠오르는 달 들판의 쟁기와 커피 따는 땀 젖은 얼굴들의 그 노래를 안다면 아프리카는 내게 불러줄까"

16.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