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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포드를 발명한 로켓 엔지니어
2016.08.25 Thu 1,574

기사 요약

복잡한 과정없이 전용 머신에 장착해 버튼만 누르면 되는 포드 커피머신. 간편함을 추구하는 홈카페족에게는 더없이 편리한 도구다. 포드 커피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스위스인 로켓 엔지니어가 이탈리아 여성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무도 캡슐 커피를 마시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포드커피 머신 개발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숙련된 로켓 엔지니어였던 에릭 파브르(Eric Favre)는 1975년 자신의 회사를 따로 차리기 전 다국적 회사의 내부 업무에 대해 배우기 위해 네슬레의 패키징 부서에 입사했다. 그는 발명가가 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아내 안나 마리아(Anna-Maria)의 놀림은 그가 홈 커피 소비에 혁신을 일으키는 아이디어를 향해 움직이게 만들었다. 마리아는 스위스 출신 남편에게 ‘당신의 국가는 커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놀렸고 남편은 “아내에게 내가 최고의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완벽한 커피를 찾기 위해 로마 곳곳을 다니며 ‘백 투터 퓨처’와 같은 영화들에서 보여질만한 원통형과 튜브들로 이루어진 어색한 조합의 원형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했다. 1975년에 파브르씨의 갖게된 커피에 대한 물음은 그를 로마에서 최고의 에스프레소를 제공하기로 알려진 관광지로 소개되는 카페 산트유스타치오(Sant'Eustachio)로 이끌었다. 안나 마리아를 그의 ‘스파이’로 이용한 파브르씨는 산트유스타치오의 뛰어난 커피와 크레마의 핵심은 뜨거운 물이 커피 가루를 통해 펌핑되는 동안 반복적으로 공기가 통하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만들어낸 1회용 포드를 통해 최대한 공기와의 접촉을 목표로 한 머신에 대한 아이디어는, 파브르씨가 산트유스타치오 바리스타를 지켜보면서 생겼다고 밝혔다. 하지만 홈메이드 에스프레소에 대한 네슬레 내부인들의 반대는 아주 강경했다. 인스턴트 커피 블렌드로 아주 유명한 네스카페는 당시 초기의 붐을 즐기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간부들은 비싼 홈 에스프레소 머신에 투자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인스턴트 믹스가 홈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커피로 남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파브르는 집요하게 고집을 부렸고, 그가 사장으로 임명되자 네스프레소는 1986년도에 런칭하게 되었다. 30년 동안 이 머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식음료 회사인 네슬레의 핵심 수익 발전기가 되었다. 블룸버그 뉴스 에이전시에 따르면 지난해 네스프레소의 매출은 45억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비록 경쟁자들이 네스프레소의 시장 점유를 막아서고, 사용된 포드가 발생시키는 폐기물로 인한 환경적인 우려도 커지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생기고 있다. 파브르씨는 네스프레소가 영화배우의 홍보로 아주 큰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 전 네슬레를 떠났지만 커피 포드의 발명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한편 그동안 네스프레소의 인기는 폭발했지만 그들의 여러 핵심 특허권들은 2011년도에 만료됐고 이것이 그들의 성장에 아주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시장리서치 회사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네스프레소 호환성 포드를 만드는 회사들을 포함한 경쟁자들은 “더 낮은 금액으로 판매하고 더 큰 유통망을 보유한 덕분에 더욱 빨리 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로 서부 유럽에서는, 네슬레의 커피 포드 시장 점유율이 2011년도에 41%에서 지난해 37%까지 떨어졌다고 유로모니터는 전했다. 참조: http://www.straitstimes.com/lifestyle/food/the-rocket-engineer-who-invented-the-coffee-pod  

복잡한 과정없이 전용 머신에 장착해 버튼만 누르면 되는 포드 커피머신. 간편함을 추구하는 홈카페족에게는 더없이 편리한 도구다. 포드 커피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스위스인 로켓 엔지니어가 이탈리아 여성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무도 캡슐 커피를 마시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포드커피 머신 개발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숙련된 로켓 엔지니어였던 에릭 파브르(Eric Favre)는 1975년 자신의 회사를 따로 차리기 전 다국적 회사의 내부 업무에 대해 배우기 위해 네슬레의 패키징 부서에 입사했다. 그는 발명가가 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아내 안나 마리아(Anna-Maria)의 놀림은 그가 홈 커피 소비에 혁신을 일으키는 아이디어를 향해 움직이게 만들었다. 마리아는 스위스 출신 남편에게 ‘당신의 국가는 커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놀렸고 남편은 “아내에게 내가 최고의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완벽한 커피를 찾기 위해 로마 곳곳을 다니며 ‘백 투터 퓨처’와 같은 영화들에서 보여질만한 원통형과 튜브들로 이루어진 어색한 조합의 원형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했다. 1975년에 파브르씨의 갖게된 커피에 대한 물음은 그를 로마에서 최고의 에스프레소를 제공하기로 알려진 관광지로 소개되는 카페 산트유스타치오(Sant'Eustachio)로 이끌었다. 안나 마리아를 그의 ‘스파이’로 이용한 파브르씨는 산트유스타치오의 뛰어난 커피와 크레마의 핵심은 뜨거운 물이 커피 가루를 통해 펌핑되는 동안 반복적으로 공기가 통하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만들어낸 1회용 포드를 통해 최대한 공기와의 접촉을 목표로 한 머신에 대한 아이디어는, 파브르씨가 산트유스타치오 바리스타를 지켜보면서 생겼다고 밝혔다. 에릭파브르 하지만 홈메이드 에스프레소에 대한 네슬레 내부인들의 반대는 아주 강경했다. 인스턴트 커피 블렌드로 아주 유명한 네스카페는 당시 초기의 붐을 즐기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간부들은 비싼 홈 에스프레소 머신에 투자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인스턴트 믹스가 홈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커피로 남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파브르는 집요하게 고집을 부렸고, 그가 사장으로 임명되자 네스프레소는 1986년도에 런칭하게 되었다. 30년 동안 이 머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식음료 회사인 네슬레의 핵심 수익 발전기가 되었다. 블룸버그 뉴스 에이전시에 따르면 지난해 네스프레소의 매출은 45억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비록 경쟁자들이 네스프레소의 시장 점유를 막아서고, 사용된 포드가 발생시키는 폐기물로 인한 환경적인 우려도 커지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생기고 있다. 파브르씨는 네스프레소가 영화배우의 홍보로 아주 큰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 전 네슬레를 떠났지만 커피 포드의 발명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한편 그동안 네스프레소의 인기는 폭발했지만 그들의 여러 핵심 특허권들은 2011년도에 만료됐고 이것이 그들의 성장에 아주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시장리서치 회사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네스프레소 호환성 포드를 만드는 회사들을 포함한 경쟁자들은 “더 낮은 금액으로 판매하고 더 큰 유통망을 보유한 덕분에 더욱 빨리 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로 서부 유럽에서는, 네슬레의 커피 포드 시장 점유율이 2011년도에 41%에서 지난해 37%까지 떨어졌다고 유로모니터는 전했다. 참조: http://www.straitstimes.com/lifestyle/food/the-rocket-engineer-who-invented-the-coffee-p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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